다시 시작하는 인생 (고전2:1-5)

 

인생은 누구나 다 실패를 경험한다. 경이롭게 보이는 사람의 인생을 보면 예외 없이 그의 인생도 실패와 패배의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찬란하게 보이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으로 나눈 것인가? 실패했을지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들고 일어나 하나님 주시는 새로운 축복을 향해 나갔는가의 여부이다.

성경에 보면 많은 케이스가 소개된다.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실패를 경험한다. 만일 그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도바울도 그렇지 않은가? 스데반을 죽인 살인의 현장에 머물렀다면 그가 어떻게 위대한 사도가 될 수가 있었을까?

오늘 본문에 소개된 사도바울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중에도 실패를 경험한다. 본문에 무엇 때문인지 바울은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곳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그를 향한 하나님의 충만한 자리까지 나갔다. 심지어 감옥에서 조차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에 충만한 자리까지 나가는 성공하는 인생모습으로 우리에게 도전한다.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까?

 

첫째, 세상에 상대적인 진리에서 절대적 진리로 그의 눈을 옮겼다.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두렵고 떨리는 환경 가운데로 ‘하나님의 증거’를 가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가 많은 공부를 했기에 세상 학식이나 논리적 기술이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그의 신분의 기득적인 힘을 믿고 들어간 것이 아니다. 그의 심리가 그처럼 위축될 만큼 주변의 환경이 혼돈스럽고 사방이 막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지만 바울은 눈을 들어 절대적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고 그 말씀을 붙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에 모든 꿈이 허물어지고 살아갈 용기가 다 없어질 때 홀로 앉아 낙심과 탄식하는 것은 평범한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분의 품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붙잡는 것이다. 그분의 뜻을 구한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능력으로, 유에서 무로 돌려놓는 힘으로 우리의 인생을 이끄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먼저 가셔서 역사하신다.

 

둘째, 십자가의 도를 묵상했다.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그가 아는 모든 앎을 다 지우겠다고 결단한다. 십자가 외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앎은 오히려 그에게 많은 갈등과 혼돈과 그 결과 두려움과 떨림을 주었던 것이다. 오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갈등을 가져다주고 생명력 없는 신앙을 추구하게 하고 교회 안에서 마치 소비자적 위치에서 머물게 하는 원인은 십자가의 도에 대한 묵상 부족이다. 교회 역시도 일군을 양성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궁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성도를 소비자로 바라보는 대형마트같은 마인드가 되게 된 것 역시도 십자가의 도에 대한 묵상 부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그분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는 거룩한 경험, 날마다 그 십자가에 다시 나가 되살아나려는 상대적 진리에 의존하려는 삶의 욕망에 대한 사망을 선포하고 바울처럼 갈2:20을 묵상하며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셋째,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다.

본문 4-5절을 보면 바울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날마다 인도함 받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축척된 지식과 정보의 양이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환경이 나를 거스리는데 어떻게 그것을 넘어 인생 문제를 풀어낼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다. 그분이 오셔서 역사하셔야 나의 무의식이 경영되어지고 변화된 인격으로 작은 예수가 되는 것 아닌가! 그분이 오셔서 도우셔야 머리되신 주님의 수족답게 춤을 출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분 없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깨달으며 가르치고 헌신하는 사역이 가능한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한다. 교회의 멤버가 되어 교회 문화에 함께는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거듭남과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도우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무나 할 수 없는 다시 시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