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시38:9-15)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 가운데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이 강하게 세워져있는 것을 본다. 사회심리학자 Ernest Becker는 그의 책 [The Denial of Death]에서 현대인은 마음속에서부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잘난 척 우쭐대며, 자신도 우주에 속한 상대적 존재임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상대적 존재로 인식하고 밖에서 나를 볼 수 있는 눈만이 나의 죄인 됨을 깨달게 하는데 그것을 막아 버렸던 것이다. 인간의 고통이나 실패나 좌절을 죄의 개념과 같이 관련지으려고 생각지 않는다.
결국 모든 실패의 원인이 되는 죄의 처리문제를 생각지 않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디 있는가?
오늘 본문에 보시면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breakdown된 다윗의 모습을 본다. 내적으로 외부적으로 찾아온 수많은 공격과 성처들로 앞을 제대로 불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그 상처 한 복판에서 자신을 든든히 세우고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 하나님의 자기를 통한 소망을 이루어 드렸는지를 보여준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존재를 정의하라(사43:4-5)
세상적 차원에서의 가치는 내가 무엇인가 성공을 이루고 많은 업적을 쌓고 명성을 얻어야 한다. 겔28:2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을 너무 격하시킨 나머지 하나님 앞에서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고 자신의 쓸모없음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God-complex에 빠져 자신을 하나님과 혼동하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기보다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인척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십자가의 관점으로 나를 보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나의 소중한 삶의 존귀함을 다른 사람의 평가에다 맞추는 것은 어리석다.
둘째, 상처를 상처되게 하지 말라(9절, 시32편:3)
오늘 우리들의 문제를 상처를 움켜잡고 사는 경우이다. 그로인해 그 상처가 마음속에 가시가 되어서 더 깊은 차원의 상처를 남기는 것을 본다. 오늘 다윗은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 나가지 못하도록 자기의 발목을 잡는 상처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그는 그의 소원과 함께 상처도 감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쏟아 놓는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후 그것을 감추려 했으나 그 결과 거짓말하고 위장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살인으로 끝을 낸다. 죄를 덮으려던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시32:3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시름하였나이다. 내 뼈가 상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죄는 고백할 때 보혈의 능력으로 치유함 받고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셋째, 하나님을 바라보라(15절, 21-22절)
물에 빠진 사람이 아무리 혼자 발버둥을 쳐도 스스로 물에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죄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하나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망가진 인간성을 취해 자기의 것으로 삼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자신을 희생시키셨고, 그분 마음속에서 우리 죄를 이겨 내심으로 우리 마음도 변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윗은 15절에서 이 사실을 알았기에 그의 문제를 정치논리나 경제논리로 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좌로부터 흘러넘치는 그 능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이 나를 치유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며 기다렸다. 21-22절에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알이라고 하는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새는 다른 세계를 알 수도, 누릴 수도 없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자기를 볼 수도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의 또 다른 세계를 누릴 수도 없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정의해보라. 그분 앞에 무엇을 숨길 수 있을까? 하나님 아버지는 자식의 죄 값을 대시 치르고 싶어하는 아버지다. 그러나 세상 아버지와는 달리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분과의 관계를 더 깊이 세워가라.